글씨에 담긴 그림자, 진실의 가능성 (2011.03.19) 조간읽기

글씨에 담긴 사람의 그림자
한 방송사의 폭로로 재점화 되었던 고 장자연씨의 생전 일에 대한 논란이 일단락 되었습니다. 처음 폭로를 했던 방송사 취재진이 잘못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근거는 더 있겠지만, 그 중에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필적 감정 결과였습니다. 필적 감정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필적은 마치 지문 같습니다. 그 사람의 고유의 색깔을 갖고 있고, 다른 사람이 흉내낼 수 없다는 것이죠. 글씨의 모양은 물론이고, 심지어 글씨를 쓰는 속도, 압력, 글자의 간격 등도 글씨의 주인을 가리는 요인이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물의를 일으킨 취재팀도 바로 이 필적 감정에 의존했다가 판단을 글러버린 것 같습니다. 글씨에 남은 한 사람의 자취가 확실하다는 과학적 가능성만으로는 사안의 진위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과학적 가능성을 어떤 사람이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진실을 밝힐 수도 있지만, 거꾸로 혼란을 가져오기도 하는 사실을 되새기게 합니다. 문제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믿고 싶은 것만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도, 예외는 아닙니다. 과학은 가능성만을 열어줄 뿐입니다.
장선희, 손효주, 김진 (동아 2011.03.19  14면, 필적 당신도 당신을 속일 수 없다 http://news.donga.com/3/all/20110319/35699500/1 )

원자력 발전..해법은?
후쿠오카 원전 사고 이후, 원자력 발전에 대한 성찰이 봇물을 틔우고 있습니다. 독자들은 이 가운데, 관성에 기댄 비판을 가려야 할 어려움이 생겼습니다. 이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대안과 해법을 찾을 수 있는 현실적 비판일 텐데, 그것을 가려내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물론, 현실적 비판이라는 것이 반드시 지금 있는 상태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과는 다릅니다. 하지만, 원자력 발전의 중단이 합당한 결론이라 한다면, 그것의 해체가 어떤 과정을 밟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려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아래 글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우라늄의 확인 매장량이 79년 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원자력 발전소의 폐기비용에 관한 문제제기입니다.
한승동 (한겨레 2011.03.19 17면 서평: 끌수 없는 불 원전신화는 무너졌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68818.html )

(2011.03.18)


(2011.03.17)


1 2 3 4 5 6 7 8 9 10 다음